뉴욕 플러싱에서 살지만 몇 년 전까지는 맨해튼에 있는 CPA 사무실에서 일했어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미국 와서 애 낳고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아이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예전 회계 지식을 살려 다시 일했죠.
그 경험 덕분에 미국 직장문화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직"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생각이 우리 한국식 사고랑은 꽤 다르다는 점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이직한다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죠. "그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을까?", "적응 못해서 옮기는 거 아냐?" 같은 시선도 있고요.
미국에서는 전혀 달라요. 오히려 이직은 승진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제가 일했던 CPA 사무실만 봐도, 직원들의 이직이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제가 친하게 지내던 한 백인 여성 동료는 2년 정도 일하고는 다른 회계 법인으로 옮겼어요. 이유를 들어보니 연봉을 조금 더 주고, 집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포지션도 살짝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주변 동료들이 어떻게 반응하냐면, "우와, 축하해! 경력에 도움되고 돈더 더 벌겠네!" 이런 분위기예요.
한국식으로 보면 "지금 회사도 괜찮은데 굳이 왜 옮기지?" 싶을 수 있지만, 미국 사람들에게는 커리어를 계단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한 회사에서 차곡차곡 승진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레벨업' 하는 것도 완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봅니다. 어떤 경우엔 현재 회사에서는 당장 더 높은 포지션이 없는데, 다른 회사에서 팀 리더 자리를 제안하면 그걸 받아들이는 식이죠. 회사 내부 승진이 늦어도, 외부 기회를 통해 올라가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직을 결심하는 데 있어서도 눈치를 보는 문화가 없어요. 조용히 퇴사하는 게 아니라, "다음 주부터 새로운 회사에서 시작해!"라고 당당하게 말하죠. 상사나 동료들도 그걸 응원해줘요. "거긴 워라밸 좋다더라", "새로운 팀도 잘 맞았으면 좋겠다" 하면서요. 심지어 예전 직장 동료였던 사람이 나중에 다른 회계법인에서 연락 와서 "우리 팀에 자리 났는데, 너 생각나더라" 하고 스카웃 제의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문화는 사람들에게 자기 커리어에 대한 주도권을 준다고 생각해요. "나는 여기서 내 가능성을 다 발휘했어. 이제 새로운 무대에서 더 성장하고 싶어." 이런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력서를 봤을 때 한 회사에서 10년, 20년을 일했으면 "성실하다"는 느낌보다 "왜 그렇게 오래 있었지? 도전은 안 했나?" 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자주 이직하는 것도 리스크는 있어요. 12년마다 옮기면 "이 사람은 안정감이 없다"는 인식을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일반적으로는 한 직장에서 최소 23년 정도는 머무는 걸 기본으로 봐요. 그 기간 동안 실적도 쌓고, 새로운 업무도 배우고, 그런 다음에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 게 이상적인 커리어 루트죠.
CPA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경력이 있는 지원자들 중 이직 횟수가 많더라도 각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어떤 포지션이었는지 잘 설명만 되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이 사람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 잘하고, 변화에 유연하구나" 라는 인상을 줄 수 있거든요.
이직을 '승진'의 다른 형태로 보는 이 문화는 사실 육아 마치고 경력 재개했던 저 같은 사람에게도 꽤 힘이 되는 부분이었어요. 중간에 커리어 단절이 있더라도, 다시 시작해서 단계별로 옮겨가며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한 군데에서만 승진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유연한 사고방식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전업주부로 돌아왔지만, 그때의 직장 경험 덕분에 미국식 커리어 마인드가 익숙해졌어요.
제 아이들이 커가면서 언젠가 사회에 나가게 되면,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면 언제든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건 결코 불안정한 게 아니라, 요즘 시대엔 오히려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커리어 관리 방식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