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도에 절정이었던 짐캐리의 활동은 대단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바로 짐 캐리라는 이름 석 자가 전 세계를 웃음으로 뒤덮은 해였기 때문이다.

한 해에 세 편, 그것도 모두 주연작이 흥행에 성공한 배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그 세 편이 전부 코미디라면? 그리고 그 코미디가 모두 당시 기준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면?

짐 캐리는 바로 그런 일을 해냈다. 준비된 광기, 통제된 애드리브, 그리고 작품 전체를 자기 색깔로 재구성해낸 배우의 ‘능력’이었다.

1994년은 짐 캐리의 해였다


그 해 1월, 에이스 벤츄라: 펫 디텍티브가 개봉했다. 반려동물 전문 탐정이라는 괴상한 설정. 헐리우드 스튜디오도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런데 짐 캐리는 자신의 캐릭터를 거의 통째로 갈아엎으며 새로운 희극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시종일관 미친 사람처럼 눈을 부라리고, 턱을 앞으로 내민 채 이상한 억양으로 말하고, 걸음걸이조차 만화 같은 과장을 담았다. 이런 캐릭터는 당시 관객들에게는 거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웃겼다. 정말 웃겼다. 그냥 미친 척한 게 아니었다. 그 안엔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와 리듬이 있었다.

그리고 7월, MASK가 개봉했다. 이번엔 진짜 만화 캐릭터였다. 노란 정장, 말도 안 되는 탄력과 변형 능력을 가진 녹색 마스크를 쓴 사나이. 그런데 이 영화의 마법은 특수효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스크를 쓴 짐 캐리는 CGI조차 따라갈 수 없는 ‘표정 근육’과 ‘움직임의 타이밍’을 보여준다.

흔히들 말하는 “CG보다 사람이 더 만화 같다”는 말은 이 작품에서 진짜가 된다. 감독이 회상하기로, 짐 캐리의 애드리브는 편집실에서도 감독과 스태프들이 웃느라 멈춰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있던 대사도 날려버렸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쏟아냈고, 그게 전부 영화 속에 살아 숨 쉬게 됐다.


마지막은 12월에 나온 '덤앤 더머'다. 멍청한 두 남자의 여행기. 사실 이건 대본만 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짐 캐리의 과감함이었다. 그가 직접 상대역 제프 다니엘스 캐스팅을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제안했고, 시나리오의 파격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본인의 개그 스타일이 반영될 수 있도록, 장면마다 대사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감독 피터 패럴리와 수없이 조율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것처럼 초대박 흥행 성공이었다.

짐 캐리는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무려 7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다. 당시 그는 에이스 벤츄라로 막 스타덤에 오른 직후였는데, 상대역 제프 다니엘스는 단 5만 달러를 받았다. 하지만 제프 다니엘스 이 작품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영화 속 유명한 ‘가장 듣기싫은 짜증나는 소리’ 장면이나, 구강청결제 스프레이를 엉뚱하게 뿌리는 장면, 방귀에 불을 붙히는 장면, 혀가 기둥에 붙는 장면 등은 대부분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의 애드리브에서 탄생한 것이다. 특히 화장실에서 배탈 나는 장면은 제프 다니엘스의 명연기로 대본 이상의 웃음을 만들어냈고, 이후 그의 대표작으로 남게 됐다.

제작진은 두 배우의 즉흥 연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여러 테이크를 촬영했으며, 심지어 편집 과정에서도 배우들이 웃음 참느라 NG 낸 장면들을 고의적으로 살려 썼다는 후문도 있다.

결국 덤 앤 더머는 단순한 멍청이 코미디를 넘어, 애드리브와 배우 간 케미스트리가 만든 걸작이 된 셈이다. 짐 캐리가 맡은 로이드 캐릭터는 실제로 그의 애드리브와 아이디어가 전 영화에 녹아들어 있다고 한다.

영화 속 그 미친 듯한 ‘가장 멍청한 표정’도, 그가 거울 앞에서 연습해서 만든 표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짐 캐리를 두고 “타고난 광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의 애드리브는 철저한 ‘준비’에서 나왔다. 그는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거울 앞에서 표정을 연습했고, 친구들이 울다가 웃을 정도로 연기를 했으며, 무대에 설 기회를 얻기 전까지 수없이 코미디 클럽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실험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 후에도, 촬영 전에 대본을 통째로 외우고, 각 씬을 3~5가지 버전으로 준비해갔다. 감독과 상의해 “표준 버전” 하나, “미친 버전” 하나, “즉흥적 과장 버전”까지.

그는 단지 애드리브를 넣은 게 아니다. 그가 가진 몸의 유연함, 표정 근육의 디테일, 그리고 장면의 ‘박자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짐 캐리는 영화 한 편을 촬영할 때마다 촬영장 분위기까지 연출해냈다. 많은 감독들이 그의 열정에 압도됐고, 그러면서도 “이건 진짜 재능이다”라며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1994년, 짐 캐리는 코미디의 판을 갈아엎었다

짐 캐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헐리우드 코미디는 주로 ‘스탠드업 유머’, ‘대사 중심’이 주류였다. 하지만 그는 몸을 무기로 삼았다. 만화 같은 연기, 캐릭터 몰입, 그리고 대사 이상의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는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연기한 배우였고, CG가 아니라 사람이 만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해낸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등장 이후, 수많은 코미디 배우들이 영향을 받았다. 애덤 샌들러, 벤 스틸러, 잭 블랙… 그 누구도 짐 캐리만큼 몸으로 웃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코미디 영화들은, 더 이상 ‘말’만으로는 웃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짐 캐리는 한 해 동안, 그것도 연달아 3편의 흥행작을 내면서 할리우드 전체 코미디 흐름의 ‘템포’를 바꿔버렸다.

짐 캐리는 단순한 광대가 아니라, 감독을 설득하고 대본을 고치고 캐릭터를 재창조한 ‘창작자’였다. 그런 그가 있었기에 1994년은 단순한 해가 아니라, 짐 캐리를 위한 해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