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라웨어 주의 이름은 바로 델라웨어강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지역은 레나페(Lenape)족이 살던 곳으로, 그들은 이 강을 '레나페위히툭(Lenapewihittuk)', 즉 '레나페의 강'이라 불렀습니다. 강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그들의 생명줄이자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유럽 식민 세력이 들어오면서 이름도, 땅도, 문화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17세기 초, 영국-포우하탄 전쟁에서 식민지를 지켜낸 공으로 이름을 남긴 버지니아 주지사 토마스 웨스트 드 라 워(De La Warr) 남작의 이름을 따, 이 강은 '델라웨어강(Delaware River)'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유럽인이 처음 이 지역에 발을 디딘 것은 1609년이었습니다.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위해 델라웨어 만으로 항해하면서 처음으로 유럽 지도에 이 지역이 등장했죠. 그 후 네덜란드인과 영국인들이 각각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경쟁했지만, 정착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638년 스웨덴인들이 핀란드인들과 함께 '뉴 스웨덴(New Sweden)'이라는 식민지를 세우며 오늘날의 윌밍턴 근처 포트 크리스티나(Port Christina)에 영구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나무로 만든 요새를 짓고 무역을 하며 번영했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651년 네덜란드인들이 인근 뉴캐슬에 포트 캐지미어(Fort Casimir)를 세우자, 뉴스웨덴 병사들이 이를 공격해 일시적으로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분노한 네덜란드인들이 반격을 가해 캐지미어를 탈환하고 결국 뉴스웨덴 전체를 정복해버렸습니다. 그렇게 델라웨어 지역은 다시 네덜란드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잠시였죠. 1664년 영국과 네덜란드가 전쟁을 벌이면서 델라웨어 지역은 영국 뉴욕 식민지의 일부로 편입되었고, 이후 1682년 월리엄 펜이 요크 공작으로부터 이 지역을 넘겨받으며 펜실베이니아 식민지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델라웨어강은 당시에도 중요한 경계이자 교통의 중심이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와 델라웨어를 잇는 이 강은 상업의 동맥으로 발전했고, '남부 3개 카운티(Southern Three Counties)'라 불리던 델라웨어 지방은 점차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키워갔습니다.

펜실베이니아가 커질수록 델라웨어 주민들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1701년 '자유헌장(Free Charter)'이 제정되면서 평화로운 분리가 이루어졌습니다. 1704년에는 독립 의회가 세워졌지만 행정권은 여전히 펜실베이니아 총독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1776년, 델라웨어는 독립전쟁의 물결 속에서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3개 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에 동의하며 미국의 초창기 주 연합을 형성했죠. 그중에서도 델라웨어는 1787년 12월 7일, 헌법을 가장 먼저 비준한 주로 기록되며 "The First State"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델라웨어강은 여전히 미국 동부의 상징적인 강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을 따라 형성된 도시는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강의 유서 깊은 이름은 여전히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역사적 뿌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