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에이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면요, 특히 웨스트 코비나 같은 동네에 살다 보면 겨울이라는 계절이 참 애매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분명 달력은 12월이고 크리스마스 음악도 나오는데, 몸으로 느껴지는 건 겨울이라기보다 그냥 선선한 가을 같은 느낌이거든요.
물론 좋은 점은 많아요. 아침에 차에 성에 낄 걱정도 없고, 눈길에서 미끄러질 일도 없고, 난방비 폭탄 맞을 일도 없습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낮에는 가벼운 옷만 입어도 충분하죠. 그런데 가끔은 너무 편해서 그런지, 겨울 특유의 분위기가 없다는 게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겨울이면 원래 그런 맛이 있잖아요. 손 시리고, 코끝 빨개지고, 집에 들어와서 히터 앞에 앉아 몸 녹이면서 따뜻한 음료 한 잔 마시는 그 느낌. 그런데 여기서는 가디건 하나 걸치고 스타벅스 가서 아이스 라떼 마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이게 겨울인지, 그냥 날씨 좋은 날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가까운 데라도 눈 볼 수 있지" 하고 위로하게 됩니다. 빅베어나 마운틴 하이 스키장이 차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까요. 문제는... 가까운 것과 자주 가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거죠. 막상 주말 되면 귀찮아서 그냥 집에 있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TV에서는 뉴욕 거리 눈 내리는 장면 나오고, 사람들이 두꺼운 코트 입고 트리 앞에서 사진 찍고, 연인들이 눈 맞으며 걷는 장면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런데 밖에 나가 보면 날씨는 포근하고, 마트 앞에서 캐롤이 흘러도 계절감이 잘 안 느껴집니다. "지금이 진짜 12월 맞나?" 싶은 순간이 있어요.
여기는 비만 조금 와도 도로가 막히고 뉴스에서 난리인데요, 만약 눈이 한 1인치라도 온다면 그날은 아마 도시 전체가 멈출 겁니다. 학교도 쉬고 회사도 조기 퇴근하고, 사실상 비상 상황이 될 거예요.
그래도 따뜻한 겨울이 주는 편리함은 확실합니다. 빨래 널면 금방 마르고, 감기도 덜 걸리고, 두꺼운 패딩 꺼낼 일도 거의 없죠. 생활만 놓고 보면 정말 편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리함이 꼭 계절의 즐거움까지 채워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겨울은 좀 겨울 같아야 한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아침에 창문 열면 서리 끼어 있고, 손 시려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괜히 따뜻한 국물 생각나는 그런 계절 말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생각합니다. 올해는 한번 빅베어라도 올라가 볼까? 초보자 슬로프에서 몇 번 넘어지고, 엉덩이 얼얼해도 좋으니까 눈 좀 밟아볼까 하고요. 그런데 현실은 또 똑같습니다. 따뜻한 집, 편한 슬리퍼, 그리고 TV로 틀어놓은 벽난로 영상. 눈 대신 유튜브 눈보라 보면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10대를 보내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마음속에는 눈 오는 겨울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진짜 눈 내리는 아침에 따뜻한 커피 들고 창밖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막상 그런 겨울이 오면 또 투덜거리겠죠. 길 미끄럽다, 출근 힘들다, 신발 젖었다, 이런 말 하면서요. 사람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하고, 편하면 또 낭만이 없다고 하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눈이 조용히 쌓인 아침에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겨울을 한 번쯤은 다시 만나보고 싶네요. 그 정도 낭만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국가행정조직 이야기들 | 
CORMA FAUCHAN | 
포에버 호랑이 선생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