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제일 무서웠던 건 귀신이 아니라 전화벨이었어요. 엄마가 수화기를 저한테 쓱 넘기면서 "이거 뭐라는지 좀 들어봐" 하시던 그 순간이요. 상대는 보험회사였고, 저는 공포 영화보다 더 떨렸습니다.
그땐 그게 그냥 집안일인 줄 알았어요. 설거지처럼, 쓰레기 버리기처럼요. 그런데 이 일에 버젓이 학술 용어가 붙어 있다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이름하여 '언어 브로커(language broker)'예요. 이민 가정의 아이가 부모와 바깥세상 사이에서 말과 문화를 이어주는 역할을 뜻해요. 1990년대 중반 루시 체(Lucy Tse) 같은 연구자들이 논문에서 이 개념을 정리하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 좀 웃겼어요. 브로커라니, 무슨 부동산 중개인도 아니고요. 그런데 곱씹어 보니 이만큼 딱 맞는 말도 없더라고요.
저는 단어만 옮긴 게 아니었거든요. 의사 선생님의 애매한 표정, 은행 직원의 묘하게 짧은 대답까지 같이 번역했어요. 엄마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을 살짝 순하게 바꾸는 것도 제 몫이었고요.
이게 저만의 이야기도 아니에요. 2014년 학술지 Asian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에 실린 연구가 중국계와 한국계 청소년 499명을 조사했어요. 그중 한국계가 262명이었습니다.
결과를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한국계 청소년의 73.1%가 부모를 위해 통역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대요. 네 명 중 세 명꼴이니, 교회 주일학교 한 반이면 거의 다 '현역'이었던 셈이죠.
같은 연구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요. 엄마를 위해 통역한 아이들은 엄마의 희생을 더 크게 느꼈고, 그게 엄마를 향한 존중으로 이어졌대요. 그 존중이 결국 문제 행동이 줄어드는 쪽과 연결됐다고 하고요.
다만 여기엔 반전 양념이 하나 들어 있어요. 이 효과는 엄마와 아이 사이 대화가 열려 있지 않은 집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났대요. 말로 표현 못 하는 마음을 통역하면서 몸으로 배운 건 아닐까 싶었어요.
물론 달콤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다른 연구들에선 스스로 통역을 잘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일수록 우울감이 높고 부모와 거리감이 커진다는 결과도 나왔어요. 같은 재료로 케이크도 되고 탄 빵도 되는 거죠.
사실 저도 탄 빵 쪽 기억이 꽤 있어요. 병원에서 엄마 검사 결과를 들었는데, 무슨 단어인지 몰라서 그냥 "괜찮대" 하고 넘긴 적이 있거든요. 그날 밤 사전을 뒤지면서 혼자 엄청 울었어요.
그런 장면이 저만 겪은 게 아니었나 봐요.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2024년에 확정한 건강보험개혁법 1557조 시행 규칙이 있어요. 2024년 7월 5일부터 적용됐는데, 의료기관이 미성년 자녀에게 통역을 맡기는 걸 원칙적으로 금지해요.
예외는 생명이나 안전이 걸린 긴급 상황뿐이에요. 그것도 전문 통역사가 오면 아이가 전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거나 보충해야 한다고 돼 있어요. 진짜 그때 이런 규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니까 요즘 병원에서 통역 서비스를 먼저 권하는 건 친절이라기보다 의무에 가까워요. 혹시 부모님이 아직도 진료실에 자녀를 데려가신다면 통역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걸 꼭 알려드리세요.
언어 브로커가 한인 가정만의 일도 아니에요. 인구조사국의 2018~2022년 미국 지역사회조사(ACS)를 보면, 5세 이상 인구의 78.3%만 집에서 영어만 써요. 나머지는 집에서 다른 언어를 쓴다는 얘기니, 다섯 명 중 한 명이 넘어요.
그 안에서 스페인어가 61.1%로 압도적이고 중국어, 타갈로그어가 뒤를 이어요. 이 많은 집 식탁 어딘가에 저 같은 꼬마 통역사가 앉아 있었겠죠.
세대가 바뀌면서 풍경도 달라지고 있어요. 퓨리서치센터 자료로는 2019년 기준 미국 내 5세 이상 한인의 67%가 영어에 능숙했대요. 바꿔 말하면 아직 세 명 중 한 명꼴은 영어가 편하지 않다는 뜻이고요.
학자들은 이 일을 어린이 노동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해요. 마저리 오렐라나(Marjorie Faulstich Orellana) 교수는 2009년 책 Translating Childhoods에서 아이들의 통역을 진지한 '일'로 다뤘어요.
그 책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놓였어요. 누가 처음으로 "너 그때 일했던 거 맞아" 하고 인정해 주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렇다고 그 시절이 억울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덕분에 저는 남의 말 뒤에 숨은 마음을 읽는 눈이 생겼어요. 레시피를 읽을 때도 "약불에서 천천히"라는 말에 담긴 인내심부터 보게 되더라고요.
엄마랑도 그렇게 특별한 팀이 됐어요. 은행 창구 앞에서 서로 눈짓만으로 작전을 짜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요.
다만 그 무게를 너무 미화하고 싶진 않아요. 열 살짜리가 집 계약서나 병원 동의서를 읽는 건, 아무리 대견해도 너무 이른 일이니까요.
그래서 요즘 저는 이렇게 하려고 해요. 아이에게 통역을 부탁해야 할 땐 먼저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기. 어려운 서류나 병원 일은 처음부터 전문 통역을 쓰기.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아이가 통역을 틀려도 절대 탓하지 않기예요. 틀린 건 아이 영어가 아니라 그 상황을 아이한테 맡긴 어른 쪽이니까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수화기를 건네받던 기억이 있으실 거예요. 그 시절의 나한테 늦게나마 "수고했어" 한마디 해주면 어떨까 싶어요.
언어 브로커라는 이름엔 확실히 무게가 있어요. 그런데 그 무게가 꼭 짐으로만 남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잘 숙성된 김치처럼, 시간이 지나면 깊은 맛이 되기도 하니까요.
오늘 저녁엔 엄마한테 전화나 한 통 드려야겠어요. 이번엔 제가 통역할 일 없이, 그냥 한국말로 수다만 실컷 떨려고요.

초코우유전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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