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엔 카지노가 없다, 그래서 캐나다 아니면 타주로 간다 - Burlington - 1

버몬트로 이사 오기 전에는 미국에서 이렇게 한국 사람이 적은 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LA나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미국 도시에서는 한인 마트 하나쯤 찾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버몬트에 와서 살아보니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최근 인구 추정 자료를 보면 버몬트 전체의 한국계 인구는 대략 1,500~2,000명 정도 라고 하는데 한국계 혼혈을 포함하는 방식 등이 달라 숫자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버몬트 주 전체 인구 자체가 65만 명 정도니까 정말 작은 숫자다. 바로 옆 뉴햄프셔 주만해도 인구가 160만이나 된다고 하니까.

그나마 한국 사람이 비교적 많이 모여 있는 곳이 Burlington과 그 주변 Chittenden County다.

2024년 인구조사 추정치를 기준으로 Chittenden County의 한국계 인구가 600-65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여기서는 길거리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자동으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처음 이사 와서는 이런 것도 있었다. 주변 사람한테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여기 카지노 어디 있어?"

그랬더니 미국친구가 한 5초 동안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내가 영어를 잘못했나 싶어서 다시 "Casino?" 했더니 그제야 웃으면서 하는 말이 버몬트에는 카지노가 없단다.

Burlington에도 없고 South Burlington에도 없다. 그래서 카지노 한번 가려면 아예 여행이 된다.

북쪽으로 올라가 캐나다 국경을 넘어 몬트리올까지 가든지, 아니면 뉴욕주 쪽으로 운전해서 가야 한다.

Burlington에서 출발하면 가까운 곳도 대략 두 시간 안팎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도 은근 재미있는 차이다.

한국에서는 강원랜드 한번 간다고 하면 큰맘 먹고 놀러 가는 느낌이지만, 미국 대도시 주변에서는 카지노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 많다.

그런데 버몬트에서는 카지노가 다시 강원랜드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오늘 심심한데 100불만 들고 갔다 올까?" 이게 안 된다. 왕복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귀찮아진다.

오히려 살아보니 이게 장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지노라는 게 꼭 큰돈을 잃으려고 가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가까이 있으니까 심심해서 가고, 밥 먹으러 갔다가 슬롯머신 한번 당기고, 그러다가 습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충동적으로 가기가 어렵다. 한국 사람도 적고, 한인타운도 없고, 카지노도 없고.

처음에는 "아이고, 여기 너무 심심한 데로 왔나" 싶었다.

한국 식재료 하나 사려고 해도 미리 찾아봐야 하고, 짜장면 생각난다고 차 타고 10분 가서 한국식 중국집 골라 들어가는 생활도 기대하기 어렵다.

Burlington에서 운전하다 보면 산이 보이고,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 계속 나온다.

한국 사람 수천, 수만 명 모여 사는 대도시의 편리함은 없지만 대신 복잡함도 덜하다.

가끔 한국 사람이 그립기는 하다.

마트에서 한국말 들리면 괜히 반갑고, 한국 사람 만나면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버몬트 전체에 한국계가 고작 몇천 명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카지노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가 시작된 궁금증인데, 결국 버몬트라는 동네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여기는 뭘 하든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곳이다.

카지노도 그렇고 한국 음식도 그렇고 한국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다.

대신 조용하게 살기에는 참 희한하게 마음이 편한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