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시 이름 중에서 개인적으로 쓰기 제일 귀찮은 이름에 무조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도시가 바로 Raleigh 입니다.
처음 보면 발음부터 헷갈리고 철자도 R A L E I G H... 중간에 왜 e랑 i랑 g랑 h가 저렇게 줄줄이 붙어 있는지 모르겠고, 미국 살다 보면 이메일 주소 쓸 때나 서류 작성할 때 이 도시 이름 한 번 적으면 괜히 손이 느려집니다.
근데 이 귀찮은 이름에도 유래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16세기 말 영국 탐험가이자 정치가였던 Sir Walter Raleigh 경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이 사람이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밑에서 신대륙 개척 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라 북미 동부 여러 지역에 영향이 컸습니다.
그래서 노스캐롤라이나 주도시 이름이 이 사람 성 그대로 Raleigh가 된 건데, 문제는 영국식 철자가 너무 고집스럽게 남아서 지금도 미국인들조차 가끔 철자 틀립니다.
랄리라고도 하고 누구는 롤리라고 하는 발음이랑 저 긴 철자가 둘 다 골아픈게 포인트입니다. 미국에서 스페인어권 영향으로 된 도시가 어쩔때는 발음도 쉽고 쓰기도 쉬워서 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Los Angeles, Las Vegas 다 읽기도 쓰기도 쉽죠.
하지만 이 도시는 이름은 귀찮아도 경제적인 파워는 만만치 않습니다. 롤리는 이른바 리서치 트라이앵글 지역의 핵심 도시로, 듀크대, UNC 채플힐, NC주립대가 만들어내는 연구 인프라 덕분에 IT, 바이오, 금융 기업들이 몰려 있습니다.
여기 유명한 기업들만 봐도 레드햇 본사가 롤리에 있고, SAS Institute라는 세계 최대 민간 소프트웨어 회사도 본사가 여기 있으며, IBM, 시스코, 그리고 PNC Financial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도 대규모 오피스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시 분위기는 전형적인 남부도 아니고 실리콘밸리처럼 완전히 테크 일변도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도시 느낌에 회사원 비율 높은 중산층 도시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름 하나 때문에 처음 온 사람들은 꼭 한 번씩 "이거 어떻게 읽어?" 하고 묻고, GPS도 가끔 롤리 못 읽고 엉뚱하게 발음할 때가 있어서 웃음 나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 이름을 가진 도시가 주도시라는 것도 묘하게 노스캐롤라이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고, 영국 귀족 이름의 흔적이 미국 남부 행정 중심지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꽤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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