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애나는 미국 중서부에 자리한 평범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꽤 드라마틱한 역사를 품고 있는 주입니다. 이 땅은 유럽인이 오기 전부터 원주민들의 터전이었고, 개척 시대를 거쳐 산업화와 현대 발전을 모두 경험한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 같은 곳입니다. 먼저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보면 인디애나는 마이애미, 쇼니, 포타와토미 같은 여러 원주민 부족들의 고향이었습니다. 이들은 강가에서 농사를 짓고 사슴과 칠면조를 사냥하며 살았죠. 지금의 에번즈빌 근처에는 고대 미시시피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앤젤 마운즈(Angel Mounds)라는 유적지가 남아 있는데,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조직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다 1600년대 후반, 프랑스 탐험가 르네 로베르 드 라 살르가 이 지역을 처음 탐험하면서 유럽인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습니다. 1700년대에는 프랑스가 무역로를 만들고, 포트 마이애미(Fort Miami)와 포트 위아트낙(Fort Ouiatenon) 같은 요새를 세워 원주민과 교역을 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인디언 전쟁 이후 이 땅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급변했습니다.
1776년 미국이 독립하고 1787년 '노스웨스트 조례'가 제정되면서 인디애나는 미국의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당시엔 아직 숲이 울창하고 원주민의 저항도 심했지만, 개척민들은 꾸준히 서쪽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1800년에는 인디애나 영토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그때 쇼니족의 지도자 테쿰세가 중심이 된 원주민 연합이 미국의 확장에 맞서 싸웠습니다. 1811년 팁페카누 전투에서 윌리엄 헨리 해리슨 장군이 이 동맹군을 무찌르면서 인디애나는 사실상 미국의 통제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1816년, 인디애나는 미국의 19번째 주로 가입했죠. 당시 주도는 코리던이었지만, 나중에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겨가며 지금의 중심이 만들어졌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와바시-에리 운하(Wabash and Erie Canal)가 완성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고, 철도가 뚫리면서 사람과 물자가 빠르게 오갔습니다. 농업 중심이던 경제는 점점 제조업으로 옮겨갔고, 인디애나폴리스, 게리, 사우스 벤드 같은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남북전쟁 때 인디애나는 북군을 적극 지원한 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떠났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공장과 철강 산업이 활발해지고, 인디애나는 중서부의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세기 초로 들어서면 자동차 시대가 열립니다. 특히 사우스 벤드의 스튜드베이커(Studebaker)는 인디애나의 상징적인 자동차 회사로, 미국 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동시에 인디애나의 스포츠 문화도 이 시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세계적인 레이싱 명소로 이름을 알렸고, 농구는 거의 '주민 종교'라 할 만큼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학교 체육관에서 열리는 고등학생 경기에도 마을 전체가 몰려드는 풍경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현재 인디애나는 농업, 제조업, 의료, 물류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한 주입니다. 광활한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는 동시에, 인디애나폴리스 같은 도시는 최첨단 의료와 기술 산업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주 모토가 "Crossroads of America", 즉 '미국의 교차로'입니다. 이름 그대로 철도와 고속도로가 집중되어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죠.
인디애나의 또 다른 별명은 "호우지어 주(Hoosier State)"인데, 이 'Hoosier'라는 단어는 정확한 어원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디애나 사람들을 부를 때 자연스럽게 쓰이는 이름으로, 약간은 친근하고 정감 있는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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