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살면서 요즘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지진입니다.
지금 LA에 살고 계신 분들 중엔 ‘지진? 설마 우리 동네에?’ 하는 분들도 많으시죠. 하지만 LA는 이미 한 번 크게 지진경험이 있는 도시입니다. 바로 1994년 1월 17일 새벽 4시 31분. 그날은 마틴루터 킹스데이 새벽이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이 지진이 바로 노스리지 지진(Northridge Earthquake)입니다. 진앙은 샌페르난도 밸리 북서쪽에 있는 노스리지 지역. 규모는 6.7. 숫자만 보면 그렇게 어마어마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얕은 깊이(약 19km)에서 발생한 이 지진은 도시 한복판을 강타한 ‘직격탄’ 지진이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한인 4명 포함 총 57명이 사망, 9,000명 이상이 다쳤고, 약 2만 채 이상의 건물이 붕괴되거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경제적 피해는 400억 달러 이상. 1990년대 기준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자연재해 중 하나였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당시 붕괴된 건물들 중 상당수가 '지진 대비가 되었다고 평가되던 건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도심 지진이 예측불허라는 뜻입니다. 주차장이 1층에 있는 아파트들, 콘크리트 기둥 상가들, 오래된 벽돌 건물들이 줄줄이 무너졌죠. 심지어 10번, 5번, 118번 프리웨이 교량들이 무너지면서 모두 7군데가 끊겼었고, 대규모 정전과 가스 누출, 화재까지 발생했습니다. LA 시민들은 당시에 픅동피해가 복구되자 마자 “도시가 또다시 전쟁터처럼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노스리지 지진이 남긴 교훈은 분명합니다. LA는 절대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 이후 경보 시스템과 대피 규정, 교육 등이 강화되고 특히, 지진 대비 내진 설계가 이뤄졌지만 전문가들은 다시 빅원이 강타하면 여전히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건축 규정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빅원의 위험성은 산안드레아스 단층인데요, 심각한건 이게 30년 넘게 조용하다는 겁니다.
지진대에서 지진이 너무 오랫동안 발생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진은 땅속 지각판들이 서로 밀고 당기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퍽’ 하고 튕겨져 나올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 힘, 그러니까 응력(stress)이 조금씩 쌓일 때마다 작은 지진으로 조금씩 방출되면 오히려 괜찮습니다. "에너지 소모가 생기도록 조금씩 풀어줘서 괜찮다”는 개념이죠.
문제는, 너무 조용할 때입니다. 지진이 몇십 년, 심지어 백년 이상 큰 지진없이 있다는 건, 그만큼 땅속에 쌓인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축적된 힘은, 어느 순간 한꺼번에 터져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빅원(The Big One)"의 원리입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산안드레아스 단층은 남부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큰 지진이 일어난 게 300년 전입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조용했죠. 그런데 이건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위험한 침묵”입니다. 지금도 이 단층은 해마다 수 센티미터씩 움직이고 있는데, 이 미세한 움직임들이 수백 년간 축적되어 언젠가 폭발적인 강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가장 파괴적인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7개의 주요 지진 단층 중 6개가 남가주에 위치하거나 걸쳐 있고, 이 중 일부는 LA 한인타운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매일 밟고 사는 땅 아래가 시한폭탄이라는 거죠.
가장 많이 알려진 단층은 역시 샌안드레아스 단층(San Andreas Fault)입니다. 북쪽 험볼트 카운티에서부터 남쪽 임페리얼 카운티까지 무려 800마일(약 1,280km)을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특히 위험한 구간은 남가주 구간, 팜스프링스 남동쪽 솔튼호(Salton Sea)에서부터 랭커스터 서쪽 휴스호(Lake Hughes)까지의 300마일 구간입니다.
연방 지질조사국(USGS)의 분석에 따르면, 이 구간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하면 최대 1,800명 사망, 5만 명 부상, 그리고 무려 2,130억 달러(약 300조 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 지질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고입니다.
게다가 이 7개 주요 단층들 중 일부는 LA 도심과 한인타운 아래까지 뻗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아 탐지가 어려운 ‘블라인드 단층’들도 있고, 과거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단층도 최근 들어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지진 단층”이라는 얘기죠.
이런상황에서 지진이 없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없을수록 ‘언제쯤일까’ 하고 대비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지진은 조용할수록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는데요, 바로 옛날 벽돌 건물들입니다.
특히 한인타운이나 다운타운 지역엔 193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 중엔 아직 지진 대비 보강(Retrofit)이 안 된 건물도 많아요. 딱 봐도 오래되보이는데 지진 나면 제일 먼저 위험하게 무너질수 있다는겁니다.
만약 규모 7.5 이상의 지진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프리웨이와 도로는 갈라지고, 오래된 건물은 주저앉고, 전기와 수도는 끊기고, 전화도 한동안 안 되고… 진짜 대재앙 상태가 될 수 있어요. 심지어 롱비치 항구가 멈춰버리면, 미국 전역의 물류도 마비된다고 합니다. 우린 물도 못 사고 화장지도 못 살 수 있다는 얘기죠.
지진은 ‘올까?’가 아니라 ‘언제 올까?’의 문제라고들 하죠. 겁주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우리가 미리 준비만 잘해두면 생각보다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캘리포니아는 해변풍경과 날씨 하나는 끝내주지만, 그 평온함 밑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특히 옛날 벽돌로 지어진 건물, retrofit(내진 보강) 안 된 아파트, 오래된 상가들은 지진 한 번이면 큰 피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한인타운에도 이런 건물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포가 아니라 현실적인 대비입니다. ‘빅원’은 영화가 아니라, 남가주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미래 시나리오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집에 생수 몇 병, 손전등, 보조 배터리 하나쯤은 준비해두시는 거 어떨까요?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릴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