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들과 대화하다 보면 "언니 MBTI 뭐예요?" 라는 질문을 최소 한두번은 듣게 된다.

처음엔 "MBTI가 뭐야? 뭔 약자야?" 하고 당황했었는데, 이제는 "나? ISFJ!" 하고 자동 반사처럼 대답이 나온다.

예전엔 사람 성격 물어보면 "혈액형 뭐예요?"였는데, 이제는 "E야 I야?", "T야 F야?"가 대화의 시작이다.

예전에는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자기중심적이고, AB형은 천재형이라는 '유사 과학'으로 사람을 나누더니, 이제는 알파벳 4개 조합으로 인간의 모든 면을 분석하려 한다. 바야흐로 MBTI로 세상을 재단하는 시대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는데, 한 번 빠져들면 정말 끝이 없다.

"아~ 그래서 쟤가 저랬구나!", "어머, 이건 딱 내 스타일이네?" 하면서 마치 점괘를 읽듯 MBTI 유형 설명을 들여다보게 된다. ENTJ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형, INFP는 감성 가득한 이상주의자, ISTP는 조용한 장인... 들으면 들을수록 나랑 주위 사람들하고도 딱딱 들어맞는 것 같아 뭔가 통쾌하다.

문제는 이걸 진짜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한 건데, 점점 "얘는 T니까 이럴 거야", "쟤는 P라서 계획 세우는 거 싫어해" 같은 식으로 MBTI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쓰기 시작하더라. 어느 순간부터는 "MBTI 모르면 꼰대"라는 말까지 들리기 시작했으니... 심지어 소개팅 어플에서는 아예 MBTI로 매칭되는 기능이 있을 정도니, 이건 거의 종교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실 MBTI는 심리학자가 만든 이론이긴 하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하다'고 보기엔 애매한 부분도 많다. 사람의 성격이 16가지 유형으로 깔끔하게 나뉜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도 어떤 날은 I처럼 조용히 있고 싶고, 어떤 날은 E처럼 친구들과 떠들고 싶은 날도 있다. 기분에 따라 바뀌는 내 자신을 보면 "나 MBTI 다시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MBTI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사람 성격도 변한다. 50대, 60대 분들이 MBTI에 관심을 안 가지는 이유?

그냥 인생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 어르신들에게 "E는 외향이고, I는 내향이에요"라고 설명하면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하고 돌아서신다. 괜히 설명했다가 "쓸데없는 거 공부하네"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MBTI를 모르면 아예 대화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회식자리에서 "너 N이야? 난 S인데 우린 안 맞아ㅋㅋ" 이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 그걸 듣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친구끼리 싸운 이유가 "그니까 너는 J라서 융통성이 없어" 같은 말이라니... 이건 거의 성격 마녀사냥 아닌가?

물론 MBTI는 사람들의 대화 소재로 아주 좋은 도구다.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바람직하니까. 하지만 그걸 절대적인 기준으로 믿는 건 위험하다. 사람은 MBTI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변수로 움직인다. 사랑, 환경, 성장 배경, 그날의 기분까지. "넌 INTP니까 연애하면 꼭 차일 거야" 같은 말은 너무 잔인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MBTI가 재미로 그치는 한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넌 이런 사람이야'라는 레이블을 붙이기 시작하면 관계도 고정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분석'만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다음에 누가 "언니 MBTI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이렇게 답할 생각이다.

"나? T처럼 생각하고 F처럼 울고, J처럼 계획하다 P처럼 망해."

그러면 아마 그 친구도 웃으며 말하겠지. "아 언니, 그럼 ESTP에 INFJ 맛 좀 넣었네ㅋㅋ"

그래, 그 정도... 이해하려는 재미, 그 정도만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