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네티컷 주의 주도, 하트퍼드(Hartford)는 미국 역사와 경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입니다.
특히 보험 산업의 중심지로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죠.
"세계 보험 수도(The Insurance Capital of the World)"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닙니다.
에트나(Aetna), 트래블러스(Travelers), 하트퍼드 파이낸셜(Hartford Financial) 같은 굵직한 보험사 본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고,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금융·보험업이 도시의 중산층을 두텁게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와 높은 세수 덕분에 하트퍼드는 '작지만 강한 경제도시'라는 평가를 받았죠.
그런데 지금 하트퍼드를 걸어보면, 전성기의 찬란함보다는 시내 곳곳에 남은 쇠락의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도시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특히 다운타운과 인접한 주거 지역은 슬럼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고급 아파트와 활기찬 상점가였던 구역이 지금은 빈 건물과 낡은 주택, 범죄율 상승으로 이어진 우범지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트퍼드의 몰락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요인 중 하나는 도시 탈출(White Flight) 현상입니다.
1960~70년대에 교외로 빠져나간 중산층 백인 가정들이 남긴 자리를 저소득층이 메우면서, 시내 세수 기반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세금은 줄었는데 치안·교육·복지 비용은 늘어나니 재정 악순환이 이어졌죠.
결국 기업들은 여전히 하트퍼드에 본사를 두지만, 실제 직원들의 상당수는 교외에서 출퇴근을 합니다.
낮에는 어느 정도 활기를 띠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면 다운타운은 텅 빈 유령 도시처럼 변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도시 재개발의 지체입니다.
보스턴이나 뉴욕처럼 끊임없이 재투자를 유치하고 도시 이미지를 세련되게 바꾼 동부 대도시들과 달리, 하트퍼드는 보험 산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산업 다변화에 실패했습니다.
IT나 창업 지원, 관광업 같은 새로운 경제 활력원이 부족하다 보니, 청년층은 일자리를 찾아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빠져나갑니다. 젊은 인구가 줄어든 도시는 자연스레 활력을 잃고, 남은 것은 노후화된 건물과 빈 상가뿐입니다.
이런 상황은 범죄 문제와도 맞물립니다. 하트퍼드는 코네티컷 주에서 범죄율이 높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특히 마약 거래와 빈집털이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슬럼화 지역에서는 실업률과 교육 수준 저하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사회적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죠. 이런 문제 때문에 교외에 사는 주민들은 하트퍼드 시내를 방문하기를 꺼리고, 그 결과 도심 경제는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트퍼드가 완전히 희망을 잃은 도시는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코네티컷 주 정부와 시 당국은 도심 재활성화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술·문화 행사를 통해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려는 시도, 공공 주택 개선 사업, 스타트업을 위한 세제 혜택 등이 그것입니다. 또, 보험 산업에서 파생된 데이터 분석·핀테크 같은 신흥 분야로의 확장을 꾀하며 "보험 수도"라는 전통적 타이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하트퍼드의 과제는 "보험만으로는 도시를 지탱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양한 산업과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 재건 모델을 만들어 가는 데 있습니다.
세계 보험 산업의 중심지라는 명성을 지켜내면서도, 낡아가는 시내 지역을 어떻게 다시 살려낼지가 포인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