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로리다 올랜도에 살기시작한지 10년쯤 됬다.
여기 특징은 누구다 다 오고싶어하는 디즈니월드, 유니버셜, 그리고 날씨...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졌다 맑아지는 비.
여기서 혼자 회사일을 집에서하고 주말엔 마트가고 강아지 산책시키고, 밤엔 작은 홈바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 공간을 채우는 향기, 바로 럼(Rum)이다.
내가 럼에 빠진 건 꽤 오래됐다.
처음엔 그냥 달달해서 좋았고, 나중엔 그 달달함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풍미와, 묵직한 목넘김의 맛에 매료됐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럼은 유독 카리브 지역에서 그렇게 사랑을 받았을까?
테킬라는 멕시코,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보드카는 러시아... 그런 식으로 '술의 고향'이 있는데, 럼은 명백히 카리브해의 아이콘이다.
이유는 의외로 설탕 때문이다. 럼은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당밀(molasses)로 만든다.
카리브해의 덥고 습한 기후는 사탕수수 재배에 최적이었고, 17세기 무렵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엄청나게 늘렸다.
그러다 보니 남은 설탕을 만들면서 당밀이 넘쳐났고, 버리긴 아깝고... 결국 사람들은 고민하다 발효시키고 증류해서 럼을 만들기 시작한 거다.
유럽 사람들도 이 술 맛에 푹 빠졌고, 배에 실어 대서양을 건넜다.
해적들도 마셨고, 선원들도 마셨고, 결국 플로리다 사람들까지 마시게 된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RUM의 매력? 위스키랑은 또 달라
럼은 마시면 좀 낭만적인 느낌이 난다. 위스키처럼 독한 알콜부즈가 강하게 나지도 않고, 보드카처럼 먹고죽자 분위기도 아니다.
대신, 적당히 부드럽고, 때로는 바닐라처럼 달달하고, 향신료가 살짝 스치는 듯한 여운이 있다.
게다가 고급 럼은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기가 막힌다. 목에 확 오는 게 없고, 마시고 나면 배 안에서 살짝 온기가 퍼지는 느낌.
칵테일 하나 소개하자면 - 다크 앤 스토미(Dark 'n' Stormy)
홈바에 럼 하나쯤 있으면, 칵테일 만드는 재미도 생긴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다크 앤 스토미(Dark 'n' Stormy)라는 칵테일.
이름도 멋있지 않나? '어둡고 폭풍치는 밤' 같은 느낌. 하지만 맛은 의외로 시원하고 상쾌하다.
레시피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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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럼 5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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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 비어(ginger beer) 100~12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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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한 조각 (혹은 라임 주스 몇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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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컵에 얼음 넣고 진저비어 붓고, 그 위에 다크 럼을 살포시 띄우면 층이 생기는데, 그 비주얼이 예술이다.
라임까지 딱 짜서 넣으면, 더운 플로리다 여름 저녁이 단숨에 "괜찮은 하루였다"로 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