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몬트 주 버링턴(Burlington)에 사는 사람들은 버몬턴 버몬티안 이런 이름을 스스로 붙여주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냥 호숫가에 있는 조용한 작은 마을일 뿐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걸 뉴욕, 보스턴 급의 "북부 자유도시"인 것처럼 포장하려고 한다. 다운타운이라고 해봐야 작은 교회앞 몇 블록 걸으면 바로 끝나고, "시내 분위기 좋지?" 라며 주차도 제대로 못할 역세권 아닌 역세권 자랑을 한다.

그런데 결국 갈 데가 쿠키, 카페, 맥주집, 그리고 버몬트 치즈 파는 가게뿐이다. 대도시 기준으로 보면 그냥 15분 만에 다 돌아보고도 "이게 다야?" 싶은데, 여기선 그게 자랑거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강요하듯 칭찬한다. "이 조용함이 진짜 럭셔리야."라고. 솔직히 이 말투에서 이미 도시 스케일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동네가 느리고, 비싸고, 춥고, 선택지가 적으면서도 자기들은 세련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버링턴에서 렌트나 집값 얘기를 꺼내면 갑자기 "거대한 호수뷰 가치" 운운하면서 수천 달러를 합리화한다. 그런데 서울 강남이나 뉴욕 맨해튼처럼 사람이 미친듯이 몰리는 곳도 아니다.

그저 겨울에 얼어붙는 호숫가 옆에서 난방비 덜덜 떨면서 빵, 치즈, 수제 맥주, 그리고 "로컬"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의 모든 물건을 비싸게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자랑하듯 즐기라고 훈수까지 한다.


여기서는 "싼 건 후진거"라는 분위기라도 있는 듯하다. 대형 프랜차이즈라도 들어오면 "버몬트 정신"을 해쳤다고 화내면서 비난하고, 그러면서 월세는 쏙쏙 올려받는다. 그냥 콧대 높은 동네 속 작은 시골 감성이라고 보면 딱 맞다.

날씨는 또 어떠냐. 겨울은 6개월이 기본이고, 눈이 내리고 또 얼고 녹으면서 길이 엉망인데, 사람들은 "이게 진짜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이지"라며 자부심을 느낀다. 얼어 죽는 날씨에 카약, 스키, 하이킹만 외치는데, 문제는 이게 다 돈이 드는 취미라는 것이다. 장비, 시즌권, 교통, 옷, 부츠까지 다 비싸다. 그런데 안 하면 "여기 와서 왜 가만히 있어? 자연을 느껴봐!"라고 압박한다.

자연이 좋긴 한데, 어찌 보면 자연 말고 별로 할 게 없으니까 그걸 강조하는 느낌이다. 겨울에 한 번 미끄러져 엉덩방아 찍으면 생각이 바뀐다. "자연이 이렇게 거친데 왜 굳이 여기 살지?"라는 철학적 고민까지 하게 된다.

이곳은 정치 성향도 매우 진보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서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지만, 정작 이 지역의 집값과 생활비는 누군가를 밀어내는 구조다. 서민을 사랑한다던 동네가 실제로는 서민이 살기 힘들게 만드는 셈이다.

그럼에도 다들 자기에게 도취된 채 승리 선언처럼 "이게 진짜 깨끗하고 선진적인 삶이야!"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을 싫어하면서 집값 상승은 좋아한다. 직장도 부족하지만, "버몬트의 슬로우 라이프"라는 명분 하나로 다 눌러 버린다.

결국 버링턴에서 산다는 것은, 작은 동네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비싼 소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겨울 추위와 끝없는 로컬 자부심 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런 곳에 정착하면, 다른 도시를 보면 갑자기 복잡하고 숨 막힌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곳은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이상하게 중독되는 도시다.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고, 떠나면 그리운데, 살면 짜증 나는 그런 느낌. 그런 버링턴을 좋아한다면, 여기 스타일에 이미 길들여진 거다라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