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10월 둘째 주쯤 되면 동네 교회 앞 간판이 바뀝니다. Trunk or Treat, 날짜와 시간, 그리고 Free라는 글자가 붙습니다. 처음 미국 왔을 땐 이게 무슨 행사인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직접 가보니 구조는 단순했습니다. 교회 주차장에 차 수십 대가 트렁크를 열고 줄지어 서 있습니다. 트렁크마다 호박이나 해적선, 영화 캐릭터로 꾸며놓고 아이들한테 사탕을 나눠줍니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주차장 한 바퀴를 돕니다. 한 시간이면 봉지가 꽉 찹니다. 부모 입장에선 솔직히 효율이 압도적입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제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자료를 좀 찾아봤습니다.
기록상 첫 언급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4년 앨라배마의 한 침례교회가 이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자주 인용됩니다. 2000년대 초에는 남부 지역 교회들이 너도나도 달력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점은 안전보다 신앙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당시 상당수 교회는 할로윈의 귀신, 해골 이미지 자체가 불편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할로윈을 아예 금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이 이겁니다. 행사를 교회가 직접 주최하면 분위기와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금지 대신 대안을 만든 셈인데, 꽤 영리한 방법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게 교회 담장을 넘어 학교, 소방서, 쇼핑몰까지 번진 건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들의 불안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불안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1980년대가 나옵니다.
1982년 가을 시카고 일대에서 독극물이 든 타이레놀을 먹고 7명이 숨지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할로윈 몇 주 전이었습니다. 이 공포가 그대로 할로윈 사탕으로 옮겨붙었습니다.
그해 일부 매장에서는 할로윈 사탕 매출이 20%에서 50%까지 줄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낯선 집에서 받은 사탕은 버리라는 말이 상식처럼 퍼졌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한국에서 비슷한 괴담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는 건 데이터가 말해주는 쪽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사회학자 Joel Best는 1958년부터 신문 기사를 뒤졌습니다. 낯선 사람이 준 할로윈 사탕 때문에 아이가 죽거나 크게 다친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주 거론되는 1974년 텍사스 사건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범인은 낯선 이웃이 아니라 아이의 친아버지였습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자기 아들에게 독을 넣은 사탕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사탕 독극물 공포는 실제 위험에 비해 과하게 부풀려진 셈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통계보다 이야기에 반응합니다. 이건 IT 쪽에서 리스크 분석할 때도 똑같이 보는 현상입니다.
진짜 위험은 따로 있었습니다. 2019년 JAMA Pediatrics에 실린 연구가 1975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할로윈 저녁 보행자 사망 위험이 앞뒤 일주일 같은 요일보다 43% 높았습니다.
4세에서 8세 아이들만 보면 위험이 10배였습니다. 이 숫자는 처음 봤을 때 좀 놀랐습니다. 사탕이 아니라 자동차가 문제였던 겁니다.
그렇게 보면 트렁크 오어 트릿은 아이러니한 해법입니다. 아이들을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빼내서, 시동 꺼진 차들 사이에 모아둔 겁니다. 공포의 대상은 틀렸지만 결과적으로 진짜 위험은 줄인 셈입니다.
동네 구조도 한몫했습니다. 미국 교외 주택가는 집과 집 사이가 멀고 인도가 없는 길도 많습니다. 저희 동네만 해도 집 다섯 채 도는 데 차를 타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곳에선 전통적인 trick or treat가 재미보다 노동에 가깝습니다. 어두운 길에 가로등도 띄엄띄엄 있습니다. 주차장 하나에 사탕이 다 모여 있으니 부모들이 반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를 위해 따로 사탕을 준비하는 트렁크도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도 평평한 주차장에선 훨씬 편하게 움직입니다.
여기에 SNS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트렁크 꾸미기가 일종의 경연이 됐습니다. 핀터레스트에 올라온 사진 보고 따라 하는 집이 꽤 많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동네 이웃 얼굴을 직접 보는 기회가 줄었습니다. 문 앞에서 아이 코스튬 칭찬하던 그 짧은 대화가 사라진 건 확실히 손실입니다.
일각에선 이게 동네 공동체가 약해진 증거라고도 합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게 아니라 모이는 장소가 바뀐 거라고 봅니다.
제가 주목하는 건 이 변화가 위에서 내려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예산 들여 만든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교회와 학부모회, 동네 단체가 알아서 문제를 풀었습니다.
비용도 참가자들이 나눠 냅니다. 각자 자기 차, 자기 사탕, 자기 시간을 냅니다. 이런 자발적 해법이 오래가는 걸 보면 미국 시민사회의 저력이 아직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도는 전통이 끝난 건 아닙니다. 인도가 잘 깔린 동네는 여전히 할로윈 밤이 북적입니다. 두 방식이 지역 사정에 맞게 공존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른 저녁엔 교회나 학교 trunk or treat에 들렀다가 해 지기 전에 가까운 이웃 몇 집만 걸어서 돕니다. 효율과 이웃 얼굴, 둘 다 챙기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무서운 건 사탕이 아니라 어두운 길의 자동차입니다. 아이 옷에 반사 테이프 하나 붙이는 게 사탕 검사보다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Sunny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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