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 베르난디노에 사는 두 아이 아빠다. 도심보다는 자연 가까운 데서 아이들 키우고 싶어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지 몇 년 됐다.

뒷마당도 있고, 공기도 좋고, 애들도 마음껏 뛰놀 수 있어서 처음엔 ‘진짜 잘 왔다’ 싶었다. 근데 요즘 들어 뜻밖의 불청객 때문에 골치다.

그 주인공은 바로… 라쿤.

맞다, 눈가에 까만 마스크 쓴 털복숭이 도둑놈 말이다.

아이들은 귀엽다는데… 난 웃음이 안 난다.

처음엔 그냥 웃고 넘겼다. 쓰레기통에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나서 나가보니까, 제법 덩치 있는 녀석이 쓰레기 뒤지고 있더라.

얼핏 보면 고양이보단 크고, 어두운 밤에 눈빛이 번뜩이는 게 살짝 무섭기도 하다.

아이들은 완전 신났다. “아빠! 얘 귀엽다! 이름 지어도 돼?”라고 하질 않나.

그래, 겉으론 귀엽지. 귀엽게 생겼지. 근데 난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진짜 속이 타들어간다.

얘네는 단순히 귀여운 야생동물이 아니라, 광견병 옮길 수도 있는 위험한 동물이거든.

산기슭에 살다 보니까 가끔 야생동물이 내려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런데 이렇게 자주, 당당하게, 주방 창문 턱 밑까지 오는 건 좀 심하잖아?

밤에 마당 불 다 끄고 누우면 꼭 한두 시간 안에 소리가 나. 쓰레기통 뒤지는 소리, 지붕 위를 툭툭 걷는 발소리.

심지어 한 번은 주방 창틀에 발자국 찍혀 있는 걸 보고 식겁했다. 그날 이후로 쓰레기 항상 집안에 둔다.

라쿤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광.견.병.

캘리포니아에서도 매년 라쿤이 광견병 매개체로 보고된 사례가 꽤 있다.

만약 아이들이 이 녀석한테 물리기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몇 번이고 말한다. “얘 귀엽다고 절대 만지지 마라. 가까이 가지 마.”

아이들이 이해는 하는데도, 어릴 때는 호기심이 앞서니까 더 조심스러워진다.

요즘은 쓰레기통 뚜껑도 꼭 챙기고 주방 창문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에 음식물 냄새 날만한 건 절대 안 남긴다.

문제는 이 녀석들이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거다. 몇 번 못 먹게 해도 계속 다시 와본다. “오늘은 열려있나?” 확인하듯이.

그런데 이게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더라. 동네 주민들이랑 얘기해보면 다들 비슷한 얘기 한다.

산 베르난디노 카운티에도 야생동물 신고 시스템은 있긴 하다.

근데 웃긴 건, 집 안으로 안 들어오면 딱히 조치 안 해준다는 거다.

그냥 마당에서 쓰레기통 뒤지는 정도는 “야생동물이 원래 그렇지요” 하고 끝.

결국엔 각자 알아서 방어해야 한다는 뜻이다.

솔직히 나도 라쿤이 아예 미운 건 아니다. 멀리서 볼 땐 귀엽긴 하지.

근데 문제는 이게 내 집, 내 마당까지 들어온다는 거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밤에 몰래 창문 열었다가 안으로 들어오면? 그런 생각하면, 절대 그냥 둘 수가 없다.

라쿤은 귀엽지만 결코 반려동물이 아니다. 야생이고, 위험할 수 있는 존재다.

지금도 밤마다 라쿤 때문에 마당 불 켜고 쓰레기통 확인하고 다닌다.

혹시라도 어느 날 갑자기 주방 창문 열려 있는 걸 보고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하면…

빗자루 들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귀엽다고 방심하지 마시라. 라쿤, 생각보다 골아픈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