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78번을 타고 달리는 출근길에 문득문득 옛생각이 많이 난다.
나는 뉴저지에서 엔진오일 첨가물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소를 다니고 있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름 과학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연구소에서 일을하다 보면 하루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다.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지금, 눈 깜짝할 새에 30대가 되었고 어느덧 33살. 부모님은 요즘 통화할 때마다 결혼 얘기를 꺼내신다.
문득 천안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쁘셨고 나는 주로 할머니 손에 컸다. 학교가 끝나면 집 앞 놀이터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는 내 작은 세상이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네를 혼자 타며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그때의 나는 겨우 아홉 살도 안 되었지만, 이상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키가 크고, 멋진 옷도 입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네를 타며 발끝으로 하늘을 차는 기분은 마치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라는 나만의 주문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시간은 무섭게 빨리 흐르고,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다.
미국회사 특유의 고강도 업무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일에 치이고 집에와서 장래를 고민하다 보면 문득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진다.
아무 걱정 없이 놀이터에 나가 그네를 타던 나.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따금 주말에 근처 공원에 가면,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보인다. 그네를 타며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나도 저랬지." 그러면서 괜히 마음속으로 그네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나이에 맞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그렇게 어른의 탈을 잠시 벗고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공원 한켠에서, 혼자 조용히 그네를 타면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건 참 묘하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고 나면 그때가 그립다.
나는 지금 뉴저지라는 땅에서 화학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천안 놀이터의 그네가 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 그네는 나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작은 시간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