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에 산다는 건 미국의 중심에서 광활한 평야와 그리고 그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전설 같은 길 하나 바로 루트 66를 볼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오클라호마주 안를 통과하는 이 루트 66는 오클라호마 시티에서부터 털사, 엘크 시티, 클린턴, 그리고 텍사스 국경까지 이어진다.

루트 66은 1926년에 개통되었다. 시카고에서 시작해 LA 산타모니카까지 총 길이 2,448마일. 그중 무려 약 400마일 정도가 오클라호마를 지나간다. 전체 루트 중에서도 가장 긴 구간 중 하나이며, 이곳 오클라호마는 '루트 66의 심장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는 중서부와 서부를 잇는 미국의 대동맥 역할을 했고, 수많은 이민자와 상인, 여행자들이 이 길을 따라 희망을 찾아 이동했다.

루트 66은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었다. 미국 대공황과 더스트 보울 시절, 중서부 농민들이 가뭄과 빈곤을 피해 서부로 향하던 피난길이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군수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던 전략적 루트였다. 특히 오클라호마는 더스트 보울 피해가 컸던 지역 중 하나였기 때문에 루트 66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생존'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복합적 의미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도로는 '마더 로드(Mother Road)'라고도 불린다. 단지 지명이 아니라, 문화적인 상징으로 자리잡은 이름이다.

루트 66을 배경으로 한 냇 킹 콜의 노래 '(Get Your Kicks on) Route 66'는 지금도 재즈바나 올드카 카페에서 종종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스톤스, 나탈리 콜 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커버하면서 리듬 앤 블루스의 고전으로 남았다. 흥미로운 건, 한국 사람들도 이 곡을 모를 수는 있어도, 'Route 66'이라는 간판은 본 적이 많다는 거다. 서울의 수제 맥주 펍, 홍대 재즈바, 혹은 캠핑 감성 숍 등에서 이 도로의 빈티지 간판은 일종의 '미국 감성' 소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잘 모르는 길인데도 그 이미지 하나로 낭만과 자유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 그게 루트 66이 가진 힘이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이 도로도 시대의 흐름 앞에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956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도한 전미주간고속도로 시스템(Interstate Highway System)이 도입되면서 루트 66은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오클라호마 중부를 지나던 주요 구간들은 I-44와 I-40 같은 빠르고 넓은 고속도로에 점점 자리를 내주게 된다. 특히 I-40은 오클라호마 서부의 루트 66을 거의 통째로 대체했다. 도로는 구간구간 잘려나가고, 사람들은 더 빠른 길로 이동하면서 루트 66의 교통량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결국 1985년 6월 26일, 루트 66은 공식적으로 미국 연방 고속도로 시스템에서 지정 해제된다.


하지만 이 도로를 향한 사람들의 감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에 더 간절해졌다고 해야 할까. 2003년, 전 구간이 'Historic Route 66'으로 복원되면서 관광지이자 문화유산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특히 오클라호마에서는 클린턴의 루트 66 박물관, 털사의 루트 66 빌리지, 오클라호마 시티의 애브슨 공원 등, 루트 66 관련 장소들이 관광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인들은 옛 감성을 따라 RV 캠핑카를 타고 루트 66을 달리며, 팬케이크 다이너에 들르고, 고전 스타일 모텔에 묵으며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우리 오클라호마가 있다.

나는 가끔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퇴근길에 루트 66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을 따라 일부러 천천히 달려본다.

고속도로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느림 속에 여유가 있다. 옛날 간판이 그대로 남은 정비소 오래된 식당들 그리고 고풍스런 주유소. 그런 곳을 지나며 느끼는 건, 이 길이 단지 아스팔트로 된 도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음악이 있고 꿈이 있다.

루트 66은 미국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언젠가 다시 살아날 미래이기도 하다.

오클라호마에 살면서 이 전설적인 길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건 꽤 낭만적인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진짜 시카고부터 LA까지 루트 66 전 구간을 따라 달려보는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